1. 작품 소개

우리 삶이 그렇죠 뭐. 어떻게 매일매일이 이벤트일 수 있겠어요.

건실, 착실, 성실한 간호사 오나라. 인생을 즐겁게 살리라 다짐했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외로움은 건강의 적!

결국 나라는 룸메이트를 구하기로 하고 평소 즐겨 읽던 웹툰 ‘서른 살 사춘기’의 작가 영인과 함께 집을 사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동갑내기 여자가 아닌 일곱 살 연하 꽃미남 청년이 들어오다니!

엉겁결에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 언제나 방글방글 웃는 영인이 밉기도 하고 마음에 들기도 하는데…….

고영인과 함께 살기 시작한 지 108일째, 천재지변이 일어나버렸다!

2. 작가 소개

신민영

사소한 인생을 근사하게 살고 싶다.

촌스러운 낭만을 기억하면서.

블로그 : http://blog.naver.com/ajwannabe

▣ 출간작

불가분의 연애

불꽃(eBook)

유혹의 기술(eBook)

뜻밖에, 우리는(eBook)

고양이가 사는 나라(eBook)

3. 차례

#76. 행복한 조연

#77. 자존감

#78. 코드블루 (1)

#79. 코드블루 (2)

#80. 코드블루 (3)

#81.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

#82. 어디가 아파요?

#83. 비밀

#84.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뿐

#85. 신인류의 사랑

#86. 네 편이 되어줄게

#87. 내내 어여쁘소서

#88. 34 - 27 = ♡

#에필로그. 몸 튼튼 마음도 튼튼, 바르게 살아요.

4. 미리 보기

“뭐 해? 빨리 팔짱 끼지 않고.”

영인은 병원 정문을 들어서기 전, 단단히 각오를 한 사람처럼 나라를 보채며 씨근거렸다.

손에 든 쇼핑백이 크게 덜렁거린다.

케이크와 마카롱 같은 주전부리를 잔뜩 사더니, 크리스마스에 열심히 일을 하는 동료들을 위해 선물을 하라고 굳이 우기는 영인이다.

일단 이것들을 들려주고, 즉시 나와서 근사한 곳에 가서 데이트를 하자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영인의 진짜 목적을 나라가 모를 리 없다.

그러니까 그 목적은 병동 사람들에게 나라에게 있어 고영인이라는 사람의 존재감 확인시켜주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돼?”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하면? 싫단 말이야. 사람들이 탁현우인지 탁구공인지 하는 놈이랑 누나를 엮고 있다는 게.”

“이제 거의 식은 분위기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향해서 금방 우르르 몰려가기 때문에 해묵은 이야기에는 오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나는 확실한 남자야. 그렇게 어영부영 잊히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분명한 걸 보여줘야 해. 두 번 다시는 그 탁구공이랑 누나랑 한 입에 올리지 못하게!”

영인은 나라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씩씩하게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병원의 오늘은 성탄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은 없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루틴이 기계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이곳의 사람들은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사실조차 망각한 듯 열심히 근무를 하고 있었다.

“어머! 주임 샘, 쉬는 날인데 왜 나오셨어요?”

나라를 발견한 윤 간호사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여자를 맞이한다.

“근처 지나다가 생각이 나서. 이거 좀 먹고 해. 간식거리 좀 샀어.”

“오, 역시. 우리 천사 주임 샘이 최고라니까.”

윤 간호사는 쇼핑백이 터지도록 가득 들어 있는 주전부리를 보더니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윤 간호사님, 그거 천사 같은 주임 샘의 남자친구가 산 거라고 빨리 소문 좀 내주세요.”

곁에 서 있던 영인이 슬그머니, 그리고 은밀하게 귓속말을 한다.

“네?”

“빨리 사람들한테 내가 오나라 간호사 애인이라고 소문 좀 내달라니까요.”

“지금요?”

“네, 지금. 롸잇 나우.”

영인이 멀뚱하게 서 있는 윤 간호사의 팔을 밀면서 눈을 찡긋찡긋한다.

뒷머리를 긁으며 어리둥절해하던 윤 간호사는 곧 스테이션 안 쪽에 있는 간호사들을 향해 쇼핑백을 들어 보인다.

“선생님들, 이거 좀 드세요. 주임 선생님이 사오셨어요.”

“주임 선생님 남자친구가 사온 거라고 하라니까!”

영인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여자를 채근한다.

나라는 영인의 팔을 잡아끌며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알아서 설명하겠지. 보채지 좀 마.”

“아, 답답하네. 그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영인은 혀를 쯧 차더니 윤 간호사의 손에 들린 쇼핑백을 빼앗아 그보다 더 높이 치켜든다. 어쩌겠나. 목마른 놈이 직접 우물을 하는 수밖에.

“여러분, 메리크리스마스!”

훤칠하게 잘생긴 남자가 쩌렁쩌렁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니 심드렁하게 있던 간호사들이 이내 관심을 가지고 하나둘씩 데스크 쪽으로 모여든다.

얼굴을 알아본 몇몇 이들이 각자 귓속말을 속닥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본 남자는 좀 더 살갑게 간호사들 앞으로 다가간다.

“오늘 같은 날 나이팅게일 정신을 잃지 않고 환자들의 쾌유를 위하여 성심을 다해 근무하시는 백의의 천사들을 위해, 잘생긴 청년 산타가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너스레를 떠는 영인의 말에 여자들의 얼굴에 어이없는 웃음이 번졌지만 싫은 내색은 아니었다. 말이야 바른말로, 팬들 사이에서 ‘얼굴천재’ 웹툰 작가로 불리는 고영인이었으니, 조금 기고만장하기로 서니 누가 태클을 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카롱과 쿠키 따위를 손에 쥐여주며 국보급 눈웃음까지 날려주니,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굴까지 붉히는 사람도 있었다.

“제가 누군지 아시는 분, 손!”

빠짐없이 과자를 나눠준 영인이 간호사들을 향해 호기롭게 질문하자 상당수가 번쩍 손을 들었다.

“오 선생님 사촌동생이죠? 예전에 병원에 와서 사탕도 한번 주고 갔었잖아요.”

“아니야. 최경주 선생님이 그때, 이 사람 오 주임 선생님 사촌동생 아니라고 했어.”

“나 알아요! 웹툰 작가 맞죠?”

“맞아. 강하진이랑 스캔들도 났잖아. 근데 둘이 진짜 사귀어요?”

모두가 여기저기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를 쏟아내며 한바탕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한다.

어찌나 자기 말이 맞는다고 큰 소리로 우기는지, 그 소란스러움이 마치 한 무리의 젠투 펭귄들 같았다.

팔짱을 끼고 서서 기다리고 있던 영인이 입술에 손가락을 붙이고 “쉿!” 하고 상황을 정리하자, 모두가 말을 멈추고 남자에게로 집중했다.

“바로 이런 루머를 깔끔하게 정리해드리기 위해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왔습니다.”

영인의 말에 간호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치며 저 남자가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해한다.

“기억하세요. 저는 강하진 씨의 남자친구가 아니라 저기 저! 저 여자의 애인입니다. 오나라 씨는 다른 누구의 여자도 아닌! 바로 나! 고영인의 여자친구고요.”

영인이 손가락으로 멀찍이 서 있는 나라를 가리킨다.

나라는 핸드백으로 얼굴을 가리며 벽에 붙어 섰다. 토정비결에서 올해 망신수가 있으니 조심하라더니 오늘의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젠투 펭귄들이 동시에 외친다.

“헐!”

그 짧은 한 글자에는 그들이 말하고 싶은 모든 어이없음과, 당황스러움과, 기가 막힘과, 궁금함이 모두 담겨 있었다.

“뭐? 오 선생님 애인이라고?”

“거봐. 내가 사촌동생 아니라고 했잖아.”

“그럼 탁 선생님이랑은 뭐야?”

“주임 샘 마성의 여인이야? 어떤 비결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도 어려운 훈남을 둘이나…….”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여인들을 지켜보던 영인이 혀를 끌끌 찬다.

이런 소굴에서 오나라가 얼마나 인고의 시간을 버텨왔을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팠다.

“나이팅게일님들, 제 이야기 아직 안 끝났어요. 한 번 더 주목.”

상냥하게 웃으며 여자들 앞으로 허리를 숙인다.

자기 앞에 선 사람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춘 남자가 전매특허, 3주 연속 누적된 미국 로또만큼 값어치 있는 꽃미소를 생긋 날린다.

“오나라는 스티커가 아니에요. 이제 곧 결혼할 여자를 아무 남자한테 막 갖다 붙이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오나라 씨는 곧 결혼할 겁니다. 바로 나랑. 아시겠죠?”

최종 변론을 끝낸 영인이 오른쪽 눈을 찡긋, 앙큼하게 윙크하고 허리를 폈다.

그와 동시에 정숙하고 있던 젠투 펭귄들이 또 일제히 와글와글 떠들기 시작한다.

나라의 말대로 또 새로운 흥밋거리를 향해 우르르 날갯짓을 하며 몰려가는 수다쟁이 펭귄들을 보면서 영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상황이 이제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으니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름다운 나이팅게일님들, 앞으로도 종종 간식을 들고 찾아올게요. 그때까지 잘 지내세요.”

영인은 이제야 속이 시원하다는 듯 돌아서서, 구석에 불가사리처럼 붙어 있는 나라의 손을 잡았다.

“이제, 가자. 데이트하러.”

“이 웬수 덩어리야. 너는 하여튼 내 인생에 짐이야, 짐!”

“그래, 알아. 그러니까 자기 짐은 자기가 잘 챙겨. 안 그러면 남이 훔쳐간다.”

영인은 지지 않고 응수하더니 여자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잡고 힘차게 걸어간다.

이미 엎질러진 물, 주워 담을 수도 없었으니 나라는 울상을 하며 귀양 가는 사람처럼 따를 수밖에 없었다.